| [353호] 승인 2014.06.17 11:58:16 | |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을 빨리 잡아오라고 닦달하는 이유는? “총리 시키려고.” 유병언이 죽어라 도망 다니는 이유는? “총리 안 하려고.”
SNS에 이런 댓글들이 올라온다는 얘기를 듣고 밥 먹다 뿜을 뻔했다. 하기야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출라치면 그럴듯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구원파 신도들이 금수원 입구에 플래카드까지 내걸며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을 콕 찍어 협박하는 이유도 “제발 총리 후보로 천거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으로 비틀 수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총리는 명실상부한 국정의 2인자다. 김영삼 정부 때는 이회창·이홍구·이수성 등 총리를 거쳐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이가 수두룩했고, 김대중 정부 때는 DJP 공동정부의 한 축인 김종필·박태준 등이 총리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의 이해찬 총리는 ‘책임 총리’라는 이름 아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총리의 존재감이 급격히 약해지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급기야 총리라는 자리가 조롱거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다 ‘총리’를 상황에 따라 얼굴마담이나 방패용 정도로 써먹으려는 대통령과 주변 참모의 그릇된 ‘총리관’ 때문이다. 마치 국정의 2인자는 따로 있다고 굳게 믿는 양.
이처럼 총리가 희화화되고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 위기에 처할 정도로 인사 검증 시스템이 무너진 데 대해서는 인사위원장을 맡은 김기춘 실장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전관예우 때문에 낙마한 안대희 전 후보자의 경우, 총리 제안을 받았을 때 이미 변호사 수임료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문제없다’며 넘어갔고 결국 사달이 났다. 6월10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서 인선에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막히게도 문 후보자는 바로 그 철학과 소신 때문에 안대희 후보 때보다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조인 출신이면 전관예우 문제를, 언론인 출신이면 철학과 능력을 검증하는 게 기본이련만, 김기춘 실장이 이끄는 인사위원회는 기본부터 소홀히 한 것이다. 기본이 사라진 자리를 충청도니, 최초의 기자 출신이니, 박정희기념재단 이사니 따위 ‘전략적’ 요소가 차고 들어갔다.
새로 단행된 청와대 수석과 장관 인선도 뒤죽박죽이다. 장관 하던 이를 차관급으로 돌려막는가 하면(조윤선 정무수석), 같은 방송사 사장을 지낸 이는 차관급으로 쓰더니(이남기 전 홍보수석) 그 밑에서 앵커를 한 이는 장관으로 발탁하는(정성근 문화부 장관 후보자) 식이다. 지난주 국장 브리핑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대통령에게 ‘나쁜 신호’를 보냈다며 걱정했는데,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우려가 줄줄이 현실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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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드카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유라시아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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