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인생을 던져!

[스크랩] 1-4 은밀한 회의실에서 외우는 대사

퐁당퐁당 당수 2014. 4. 16. 10:30

 

 

-은밀한 회의실에서 외우는 대사

 

 

내가 발탈을 공연하던 해(1979) 10월, 중앙청 앞 광화문 대로의 은행잎들이 샛노랗게 물든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술좌석에서 자신의 딸보다 어린 여자, 심수봉(가수) 신재순(모델. 한양대생. 현재 미국거주)을 품으며 즐기다가 부하직원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되었다.

 

이 날 새벽, 내 집에는 비상근무 전화벨이 소란스럽게 울렸고, 정치부 기자들은 물론 편집국 전체가 하루종일 난리법썩이었다.

 

이듬 해(1980) 봄, 빛고을 광주(光州)에서는 역사에 길이 기록될 대형사건이 터졌다.

나는 한국인 누구보다도 5·18민주화운동 소식을 일찍 접한다.

통신사에 근무한 특혜였다.

 

“지금 엄청난 일이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이문수 외신부장이 도서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선배기자들이 시키는대로 집으로 전화해 어머니에게 말했다.

 

“큰 일이 일어났어요. 나라가 어찌 될 지 모르니, 지금당장 시장에 가서 쌀을 사두세요. ”

 

 

 

 

 

* 사진: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도청에서 전두환의 계엄군에게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숨진 (무고한) 시민들의 주검. 이튿날 연막소독을 하는 가운데 광주시 청소차에 쌓여 묘역으로 실려가고 있다.

 

이 '광주민주화운동'은 625전쟁 이후에 최대의 희생자를 만든 사건이기도 하다.

사상자와 실종자를 모두 합치면 2천명까지 추정되기도 하는데, 밝혀진 사망자는 191명, 부상 852명으로 확인됨.

이 후에도 이 운동의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뒷 처리에 대해 시민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19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 때도 나는 이러한 학살이 자행되고 난무하는 세상과는 전혀 무관한 태도로, 연극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어느 불모의 지역에 호젓이 핀 꽃이 꺾이는 우람진 소리는 벽이 사면에서 몰려오는 소리 같다. 그 소리는 수목의 풍요한 입김이 메마르고 햇빛과 바닷물이 엉켜 앞뒤에 혼음이 터지느 소리로 눈과 귀에 비애를 전한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발가벗은 이브의 아랫도리처럼 누구도 위할 수 없는 현실의 낯모를 땅에서 신의 교훈마저 잊어버린 고독한 꽃의 반항과 몸부림이다. 꽃은 그러나 누구를 위한 십자가에 시드는 것일까. 배신의 상복을 걸친 비애만이 원색의 기쁨에 침묵하는 것이다.]

                                                                                                                                     -연극 ‘꽃과 십자가’ 중에서

 

 

도서실 한 켠에서 책 위에 대본을 얹어놓고 책읽는 시늉을 하며, 출근버스 안에서는 잠자는 척 눈을 감고, 연극대사를 외웠다.

 

회사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도 나는 곧잘 신들린 사람마냥 딴 짓을 했다.

 

편집부 젊은 기자들이 간부들 모르게 언론탄압/저지에 관한 비밀스런 회의를 도서실에서 할 때에도 나는 아랑곳 하지않고 연극연습에만 전념했다.

 

회사 출퇴근 길거리에서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연극장면으로 차있었다.

 

연극연습이 시작되면 친구들과의 약속도 불가능하다. 사귀는 남자친구와 멀어지는 건 당연지사고...

대신, 작품을 같이하는 연극인은 가족보다도 더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인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즐거운 상상력과의 승부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사람 심리, 감정의 몸짓, 제스추어를 분석하는 관찰력을 요한다.

 

뼈를 깍아내리는 듯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를 때도 있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결국 백지가 되어야 하는, 그 위에 색을 입혀야 하는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다.

 

1초의 계산이 어긋나서도 안된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위하여...

 

(단 1주일 동안의 공연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던진다. 낮에도 밤에도.

 

소극장 무대는 대극장과 비교될 수 없는 더한 즐거움이 있다.

 

무대에서 연기 도중, 관객의 호흡 하나하나까지도 챙겨 들을 수가 있다.

 

공연직전 때, 난 무대 커튼 뒤에서 관객들을 엿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입장한 관객수을 헤아리기 위해서이지만, 난 늘 그들을 보며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생겨나곤 했다.

 

온마음을 다 풀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 순수한 포용력을 지닌 관객, 그들이 있기에 내가 무대에서 숨을 쉰다.

 

무대 위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 움직임에 오감을 집중해 주는 관객들은 무대에 서있는 연기자들에게 오히려 기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에게는 띠끌만큼의 거짓 연기도 용서가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 연기자들은 무대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번역극 <라 뮤지카>에 이어 한 창작실험극 <잉태1> <시도2> 등에서도 나는 늘 여자 주인공 역을 맡게 되었다.

 

주인공인 만큼, 내 연기에는 작품의 성패, 책임감이 뒤따랐다.

 

광화문 세실극장에서의 <뱀>(작:반 이탤리. 번역:신정옥)과 <카사노바를 위한 예식>(작:페르난도 아라발. 번역:김미도. 연출:방태수 출연: 장희용, 김경원, 이문수, 김옥겸 등)에서 장희용과 나는 남녀 주인공인 ‘카사노바’와 ‘씰’ 역으로 무대 위에 선다.

 

<카바노자를 위한 예식>은 원제목이 <장엄한 예식>(아라발 작, 김미라 역. 타인들과의 교섭을 위해 고독과 번민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는 카바노자의 부산하고 비장한 생애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정화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난 주인공 여자, 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공연 중에 일어났던 웃지못할 헤프닝 하나.

 

곧 시작될 2막을 위해 조명 아웃된 컴컴한 무대 위로 등장해, 스텐바이하고 있었을 때이다.

 

카사노바의 어머니 역을 맡았던 김옥겸 선배(3막 시작 장면에서 등장해야 한다.)가 컴컴한 무대 위에 앉아있는 내 바로 곁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배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소곤소곤) “언니, 지금 2막인데요...!”

 

내가 그녀의 귓가에 이 말을 전하는 순간, 무대위를 비치는 조명이 훤히 켜져가고 있었다.

우리의 모습이 이미 관객들에게 들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선배언니는 기막힌 설정 하나를 즉흥으로 만들어냈다.

 

손바닥으로 무대바닥의 먼지를 쓰윽 훑더니, 바닥이 더럽다는 식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우아한 몸짓으로 퇴장을 했다...

 

아무튼 이 연극의 공연사진이 회사 사보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내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회사내에 공공연이 알려진 셈이다.

 

이 때부터 회사사람들은 나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옆자리에서 근무하던 미스 유와 미스 리는 내가 연기하는 연극을 관람한 후부턴 힘든 일을 한다며 업무의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다. 

 

틈틈이 회사 복사기로 대본복사를 했는데, 모두들 눈을 감아주었다.

 

이 회사월급은 지금의 대기업 수준이었다.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었다.

 

 

 

 주간지 '선데이 서울'(1980년 봄 무렵)

 나는 복싱을 좋아하지 않으나, 좋아한다고 제목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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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극인들은 라면 한 봉다리값이 없어서 끼니를 굶기가 일쑤였으며, 새벽에 충무로에 있는 백병원으로 가 헌혈해서 교통비를 조달해야 하는 이도 있었다.

 

지금은 영화계에서도 빛을 본 기국서 기주봉 형제도 그토록 가난했었다.

 

그렇게까지 힘겨운 생활로 하루하루를 인내하면서도 연극무대를 포기하지 않음은 그것이 주는 즐거움, 행복감이 배가하기 때문이다.

 

지방공연 때 모처럼 얻은 쥐꼬리만한 식비를 아끼려고 굶다가, 막상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안나오고 대사 전에 뱃속에서 ‘꼬로록’하는 소리가 대신 나왔다 하는 선배들의 얘기도 웃지못할 사연이다.

 

그래도 연극무대 이 외의 다른 세상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니 어찌하랴!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사는 이들에겐 힘든 삶이 숙명일런 지도 모르겠다.

 

 

 연극 <어둠의 자식들>

                                                                                                              여주인공, 카수영애를 연기하고 있는 글쓴이

 

* 사진:

선데이 서울 (1981.4.12)

내 뒷편에서 봉투를 건네받고 있는 배우가 박인배(현재 세종문화회관 관장)

그에게는 연기보다 연출에 뜻이 있어보였다.

 

 

한동안 나는 몸뚱이를 팔고 사는 여인들을 찾아나선다.

 

신촌 크리스탈 백화점 뒷골목 지하에는 '시민 극단'(대표: 심현우)에서 지은 '시민소극장'이 있었는데, 그 길건너 유리창 문 안에는 예쁘게 치장하고 앉아 담배를 피워무는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모습을 잘 관찰해야 했다.

 

대학로의 문예진흥원 소극장(지금의 아르코 예술극장) 오픈 기념(1981년) 공연 ‘어둠의 자식들’(작:이동철 연출:이상우 출연: 문성웅, 엄경환, 김애영, 김보현 등)에서 가난에 몸을 파는 여인들의 연기를 위해서였다.

 

이 작품에서 나는 주인공, 카수 영애 역을 맡았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 ‘어둠의 자식들’에서는 카수역할은 배우 나영희가 맡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극단 '연우'에는 여배우가 전무했으므로, 기성 연극단에서 활동하던 날 배우, 엄경환의 소개로 캐스팅된 것이다.

[이후 극단 '연우'는 영화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의 주인공 송광호 이외에도 설경구, 강신일, 문성근, 박광정(故) 안석환 김윤석, 김뢰하, 김여진 등을 배출함.]

 

 

 

연극 <어둠의 자식들>(극단:연우) 여주인공, 김경원

 

 

문예회관 소극장 분장실에서.

우측부터 이광수(영화감독). 김보현(추월이 배우), 김경원(배우)

 

 

 

 

 

 

 

 

'어둠의 자식들' 연습실에서 이상우(연출자)는 내게 관객이 매우 측은하게 느끼도록 연기를 해달라는 주문을 했는데, 이 때 이상우는 "여배우가 몸을 어쩌면 그렇게도 작게 만들 수 있는 거냐?"며 웃으며 칭찬해주었다.

 

연극 연기는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연극장에서는 관객의 숨을 느낀다.

공연이 잘 되었는 지, 아닌지는 간단하다. 관객들이 내쉬는 타이밍과 그 호흡의 깊이를 잘 들으면 알 수 있다. 또 관객들의 실루엣이 무대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그 공연은 영락없이 성공이다.

'어둠의 자식들'을 관람한 관객들도 가끔씩 큰 한숨을 내쉬었으며, 실루엣도 무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었다.

 

이 작품의 무대미술을 담당했던 박광수(영화감독)은 배우들의 도시락도 담당했다. 그는 여배우에게 말 한 마디도 제대로 걸지 못하는 수줍은 성격의 미소년이었다.

 

극단 연우 연습실에 자주 나왔던 김영동(국악작곡가)은 나를 하명중 영화감독에게 데리고 가서 '좋은 여배우'라고 소개하는 친절을 베풀어준 고마운 분이다.

 

 

* 극단 연우무대는

1977년 창작희곡 읽기모임으로 출발함.

정한룡, 오종우, 이상우, 김민기, 김석만, 김광림, 최형인 등 주로 서울대 문리대 극회 출신이 주요 단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연극계에 창작극 활성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1970년대 <장산곶매>, <우리들의 저승>, 1980년대 <어둠의 자식들> <한씨 연대기>, <칠수와 만수>, <변방에 우짖는 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늙은 도둑 이야기>, 1990년대 <마술가게>, <날 보러와요>, <김치국씨 환장하다>, 2000년대 <락희맨 쇼>, <이(爾)> 등을 발표.

 

이 때의 연우대표는 정한룡이었는데, 오종우(희곡 '조각가와 탐정'을 쓴 극작가이자, 치과의사)는 단원들의 식사와 술 값을 도맡아주었다.

 

공연을 끝내고 우리는 뒷풀이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이 노래는 연극인들의 술좌석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다.

 

 

님을 위한 행진곡              작사: 황석영

                                         작시: 백기완

                                         작곡: 김원중(대중가요 '바위섬'을 부른 가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상처는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란히 산자여 따르라

 

 

이후로도 극단 연우는 ‘돼지꿈’(원작:황석영 연출:정한룡 출연:강신이, 정인범, 유세원, 박인자, 강명희 등) 등을 세실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공안당국의 검열이 살벌하던 만큼 연습장의 분위기도 살벌했다. 만약의 경우, 모두다 잡혀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극에 임했으며, 김민기 작 ‘공장의 불빛’ 등의 노래를 불렀는데, 다행히 극단적인 결과까지는 가지 않았다.

 

 

                               

                                                                                                          오광록과 김경원

 

 

 

 

 

 

 

 

 

 

 

 

 

신촌에 위치한 극단 시민극장 소극장 개관기념공연.

‘검은몸들’(원작: 쟝주네. 역: 김영덕)를 공연했다.

 

희곡작가 장주네는 다채분방한 언어와 문체로 오욕과 영광, 악과 성성(聖性)의 화려한 가치전환을 전개하여 전위작가 중에서도 특이한 세계를 확립한 작가인데, 나는 여기서 온몸에 검은 칠을 하고 아프리카 여인, ‘애덜래이드 보보’ 역할을 류성희와 더블 캐스팅이었다.

 

 

“(아취볼트에게) 악취 때문에 질렸나요, 댁은? 그건 나의 아프리카 흙에서 생겨나온 거예요, 나, 보보는 원하노니 나의 옷자락을 두터운 물결위로 끌어올리리라. 시체썩는 냄새 타고 두둥실 떠돌리라. 휩쓸어버리리라. (재판정을 향해) 하여 너희, 창백하고 체취없는 종족들아, 동믈냄새 없는 인종들아, 우리같이 흑사병같은 수렁이 없는...”

 

 

장주네에 매료된 이 작품의 연출자이자 번역가 순수청년인 김영덕(탈렌트 김혜옥의 부군)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작은 천재’로 불리웠다.

 

이후 극단 시민극장(대표:심현우)의 단원들, 홍순기 이동수, 홍경연 등과 어울려 연극작업을 한다.

 

우리는 김유광 박사(현재 한국싸이코드라마 연구원 원장)의 지도로 중곡동 정신병동의 환자들과 함께 싸이코 드라마에출연했었는데 당시 연극인들로서는 매우 드문 기회로, 여러가지를 배울 수가 있었다.

 

종로 ‘태화관’에서 했던 쏘우셜드라마(사회치료극)에서는 임하룡의 부인 역을 맡아했다.

 

연극 <대머리 여가수>(원작:이오네스코)에서 나는 스미스 부인과 마아틴 부인 역을 했는데, 창고극장(연출: 김응수 83.7월 )과 시민소극장(연출:최유진. 소방서장역: 주진모 84년 11월)였다.

 

창고극장에서 연극을 하겠다며 들어온 오광록은 이 때 조명을 담당했다.

얼마 전, 사람들 앞에게 자신이 내게 빛을 보내준 장본인이었으며, 그 빛이 없다면 어떤 연기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이라며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나, 그의 인간적인 진지함과 성실함은 여전한 것 같으다.

 

시민소극장에서 한 <대머리 여가수> 공연 땐, 내한해 있던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黒田福美)가 지인의 소개로 내 연기를 보러 공연장으로 와주었다. 나보다 1살 위인 그녀는 친한파(또는 한국통으로) 일본 유명배우이다.

 

 

 

* 구로다 후쿠미:

대표작: 민들레(1985) 전격전대 체인지 맨(1985) 스위트 홈(1989) 유리화(2004)

2002 FIFA월드컵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에 열린 가이후 도시키 수상 주최 만찬회에서 초대된 일도 있었다. 한국에 관련된 책도 출판을 많이 하고 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적극적인 한국홍보활동을 두고, 마치 그녀가 재일한국인의 혈통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걱정하여 중지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 관점의 피력은 필연적으로 일부 일본인들로부터 지나치게 조국 일본을 비하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얼마전. 서울에서 우연히 이 공연의 연출자 최유진을 만났다.

런데 나를 한국판 메릴 스트립으로 인정한다면서...

이 공연 때 연출자의 요구를 뛰어넘는 여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보았었고, 그 해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으로 나를 강력하게 추천했었다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 지, 심사막판에서 박혜진이 뽑혔다고 했다.

여고 1년 후배인 박혜진은 훌륭한 배우로, 이 공연에서 스미스 부인 역을 맡았다.

 

 

 

 프랑스 파리, 이오네스코 전용극장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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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민속학자 심우성으로부터 공연을 함께 하자는 러브콜이 왔고, 1983년 12월에 또다시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혼자 서게 된다.

 

공연 타이틀은 <김경원1인 인형극, 우리산 우리강>(극단 서낭당)이었다.

 

아예 컴퓨터 안에서 살고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공연은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지구의 기후도 많이 변해 황사, 폭염, 폭설, 미세먼지가 있을 뿐 우리 한반도에도 더이상 뚜렷한 4계절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정수라, 이선희가 불렀던 노래 <아름다운 강산>의 가사도 바꿔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극단 '서낭당' 사무실에 자주 놀러오는 분이 계셨는데 그가 바로 손상기(여수 출신) 화가이다.

 

3세 때부터 앓은 구루병 탓에 척추만곡(꼽추)이라는 불구의 몸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펼쳤던 손상기(1949-1988).

 

그의 삶도 그런 로트렉을 닮아 일명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리운다는데, 내게 건네던 농담일랑은 늘 구수했다.

 

고통과 절망을 끌어안은 영혼, 손상기의 낙천적이고도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손상기(화가)

 

 

 

 

 

                                                                            로트렉의 작품

 

 

 

                                                         심우성과 30년 만의 재회. 2013년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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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활동무대를 독일에서 국내로 옮긴 무세중으로부터 러브콜이 왔으며, 연극 <환도와 리스>를 경희대 앞에 있던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사진: 김장섭                                                                                     연극 <환도와 리스>에서 열연중인 이성룡과 김경원

 

 

 

 

 

 

허벅지까지 드러낸 나(리스 역)의 야한 모습이 환도 역을 맡은 이성룡 배우와 함께 주간지 ‘선데이서울’ 한 쪽 전면에 나왔다.

 

 

[ 연극무대의 에로티시즘 ‘노출은 표현의 수단’이란 주장...

문화 불모지라 일컫던 동서울에 소극장 ‘어울림’이 개관되어 그 기념으로 아라발 원작, 무세중 연출의 ‘날개는 침대 속에’를 공연한다.

이 극은 중견배우 이성룡, 김경원 등이 출연, 연기경쟁을 벌여 화제가 되고있다.

종래의 사실적인 해석을 탈피하여 회화적인 수법의 연출로 신선한 충격파를 던지는 이 극은 ‘따르’라는 어디에 있는지도 실제로 존재하지도 알 수 없는 이상향을 찾으려는 외로운 사람들의 진지하고 과격한 태도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표출한다.

그들은 모든 행동을 머리와 입으로만 해결하며 인간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일생동안 무언가를 끊임없이 구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것을 찾는 것이 인간이라 파악하고 있다.

최근 무대에서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지만 순수극에서 노출이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라면 관객은 연극외적인 요인으로도 줄거움을 갖게 될 것이다.                                                                                     사진/글: 강남기 기자 ]

 

 

 

                                                                                                 주간지 '선데이 서울' 뒷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요! 그래야 연극PR이 되죠~"

 

정작 공연무대에 저런 장면은 없다.

사진의 스커트 길이는 사진기자의 요구였을 뿐.

 

선정적인 기사문구는 언잖았으나, 연극홍보를 해준 격이니 우리 연극쟁이들로서는 그나마 감지덕지했다.

배우들이 연기연습만 하기에도 몸이 바쁜데, 무거운 포스터, 풀통을 들고 전봇대에 붙이러 밤낮없이 서울시내를 쏘다니는 홍보작업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벽·4

1984년은 쥐띠 해이다

재앙의 날들이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버텨다오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황지우)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나는 85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웃나라도 구경해 보고 싶었고, 그동안 틈틈이 공부해오던 일본어를 실지로 구사해 보고도 싶었다.

당시에 여권과 비자를 따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교직공무원이라서 그랬는지, 비자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부모님은 그동안 딴따라 생활을 하고 있는 골치 덩어리인 장녀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으셨으나, 그런 내가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 하니, 속으로는 그다지 섭섭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잘 되었다 싶기도 한 것 같았다.

 

“일본은 네가 배울 것이 많은 나라다. 열심히 보고 배우고 오너라.”

 

아버님의 이 격려 한 마디가 내게는 두고두고 힘이 되어주었다.


 

아내는 티비를 켠 채로 잠들어 있다.

마지막 뉴스 보도, 24시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한미 장병 15명을 태운 헬기,

합동군사훈련중 동해에 침몰.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잠든 식구들을 보며>(황지우)

 

 

 

 

출처 : 은행나무아래 커피향
글쓴이 : 퐁당수(김경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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