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백만 민란' 수괴인 문성근 선배가 민주통합 시민행동 1주년 기념식에 와서 "통합정당"을 추구한다고 해서 저는 "정당은 안 될 것이다. 선거연합과 공동정부가 균형점이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실효를 볼수 있으리라"는 대꾸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민주통합시민행동의 노선이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목의 차이고 일단은 선배의 시도에도 힘을 실어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습니다.
지난 7.28 보궐선거에서 저는 은평보다 광주 남구에서 민주노동당 오병윤이 이기기를 바랐었습니다. 은평에서 이재오가 떨어지면 물론 최선이지만, 설사 이재오가 되더라도, 2012년을 향해서는 차라리 나은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재오가 되면 이명박의 독단이 더 심해져서 2012년까지는 국민이 폭발직전에 이를 것이고, 광주에서의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민주당은 아마 뿌리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속한 민주통합이나 문성근 선배의 기획 등이 절박하게 호소력을 가지기도 할 것이구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은평을 이재오 당선 광주 민주당 당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바램은 삼 개월 뒤10월 재보선에서 광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무소속이 당선되고 민주당이 3등하는 결과로 귀결 되었습니다.
2012 년에 총선과 대선을 다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대연합이 필수조건이고, 거기에 더해서 유권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민주당이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에게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인센티브를 줘서 연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스스로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DJ 시절이라면 당중앙만 결단을 내리면 어느 정도 저런 일들을 추진할 수가 있겠지만, 지금 민주당은 중앙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민주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보입니다. - 여기까지는 문성근 선배의 인식과 같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의견이 다릅니다.
첫번 째, 새로운 정당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 미국 민주당과 같은 무지개 정당의 형태가 대한민국의 민주-진보-개혁 진영이 결국 도달하게 될, 따라서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는 점은 과거 열린우리당에게도 요구했던 바지만, 바로 그 열린우리당조차도 미국 민주당의 형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또는 현재의 모습대로 민주당과 참여당으로 찢어졌습니다). 이를 보면서 저는 더이상 하나의 정당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미국 민주당과 같은 무지개 정당의 형태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겠고, 어쩌면 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민주-참여-민노-진보신당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는 일은 2012년은 고사하고 앞으로 2022년이 지나도 어려우리라고 봅니다. 정책적 차이나 감정의 앙금만이라면 극복할 길이 차라리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더 어려운 장애물은 그런 차이나 앙금을 넘어 큰 천막을 친다는 발상 자체, 즉 타협과 흥정이라는 발상 자체를 죄악시하는 비뚤어진 결벽증, 또는 교조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반한나라당 연합, 다시 말해서 관료제-자본-언론-기득권층의 인맥이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고리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연합을 이룩해야 하고 이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방법은 정당 통합이 아니라 선거연합과 공동정부입니다. 이것은 정당통합과 같은 수직적-구조적 통합에 비해 훨씬 느슨한 기능적-다원적 연합입니다. 이게 어떤 종류의 연합인지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컨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대표가 단일화에 합류하지 못한 것은 단일화라는 것이 결국 민주당에게 부당한 이익을 몰아주는 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이 옳건 그르건 그는 그래서 단일화보다는 진보세력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단일화를 하지 못하면 앞으로 모든 선거에서 대략 2대1 정도의 비율로 한나라당에게 집니다 (현재 국회 판세가 그런 결과에 가까울 것입니다).
후보 단일화가 된다면 1대1 정도의 경합구도에서 근소한 차이로나마 한나라당을 꺾을 수가 있다고 보는데, 현 상태에서 후보단일화를 하게 되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전국 도처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후보단일화란 소위 진보세력에게는 독약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사정은 설령 진보주의자들이 민주당과 합당을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참여당조차도 민주당 안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었다면 독자 창당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유시민이 참여당을 만들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더라면 경기도지사 후보가 될 확률이 훨씬 낮지 않았겠습니까? 참여당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덕분에 김진표와 1대1 경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유시민이 그럴진대 하물며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은 합당을 했다가는 완전히 개무시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리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나중은 접어두고 현 상태에서 연합의 가능성은 무엇보다 "2012년 공동정부"라는 구상을 널리 퍼뜨리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민주당의 주요 인물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2012년 집권하게 되면 (누가 대통령 자리를 맡든지는 접어두고) 일단 노동부, 통일부, 여성부, 복지부, 환경부 정도는 현재 민노당 및 진보신당 쪽 사람들에게 내준다는 약속을 하는 겁니다. 일종의 섀도 캐비닛인 셈인데, 누구를 꼭 집어서 말할 필요는 없고 진영간 나눠먹기의 기본 질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민주당에서 자발적으로 할 의지도 없고 역량도 없습니다. 따라서 외부에서 이것을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파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구역에서 민주당이 양보해야 한다는 명분이 자연스럽게 시민 사회와 국민 사이에서 무겁게 번져나갈 것입니다.
두번 째, 성급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장차 한국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통일 후까지를 내다볼 때, 느슨한 조직, 느슨한 리더십, 느슨한 권위의 모델은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아주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수직적 단일 조직을 지향하는 합당보다는 다원적이고 느슨한 형태의 기능적 연합을 지금 먼저 연습해서 익혀놓은 세력이 미래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통일 후의 질서는 연방제가 아니면 처절한 비극으로 점철되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으며, 연방제란 곧 지금 우리가 흉내만 내고 있는 지방자치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세번 째 이번 지방선거에서 5+4, 또는 4+4 연대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희망과 대안' 백낙청 교수 같은 분들이 조금 시도해 보다가 맘대로 안 되니까 "실패"를 선언하고 손을 털었지만(그 직후 김진표-유시민 연합이 이뤄졌고, 그후 경기도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후보들도 연합에 동참했습니다), 민주통합시민행동은 끝까지 연합의 의미를 중시했습니다. 실제로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9 곳에서 연합이 이뤄진 것이고, 그밖에 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의원 선거 등에서 국지적으로 이뤄진 연합은 이번에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런 엄연한 현실이 있었는데, 단지 중앙 차원에서 싹쓸이 식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연합 실패를 선포한 백낙청식 사고는 전형적인 상의하달식 엘리트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싹쓸이식 합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왜냐하면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지금 나름으로는 민주화(?)되어 있어서 중앙의 명령만으로는 일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앙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식의 요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상에 역행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작년 민주통합시민행동 창립 때부터 그 취지에 동감해서 참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목표는 느슨하고 다원적인 선거연합과 공동정부입니다.
네번 째, 이제는 민주당을 비롯한 각 정파에게 연합이 필수조건이라는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그 압박은 전략적 동맹, 기능별 선택적 연합 등과 같은 느슨하고 다원적인 방식이 가능하다는 방향의 가능성을 시민사회와 국민들 사이에 넓고 두텁게 확산시키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 희망과 기대가 생길 수 있고,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따위의 비겁한 변명을 자신있게 물리칠 수 있는 풍부한 논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민주당,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에 속한 현역 정치인 중 어느 누구도 네 당을 아우를 만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즉, 합당을 설사 하더라도 금방 깨지고 말 것이라는 뜻이지요. 이 네 정파가 연합세력이 되어 선거에 이기고, 나아가 집권해서 뭔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려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 상당수가 느슨하지만 전략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는 정치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거연합, 빅 텐티즘(big tentism, 큰 천막주의), 절차적 공정성, 차이와의 공존 등과 같은 기조 위에서 시민 사회의 성숙하고 사려 깊은 압박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문성근 선배의 백만 민란 선포식을 사흘 앞두고 축하의 말을 쓰려고 이 글을 시작했지만 또 노선투쟁을 시작하자는 투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오랜 세월 운동권과 영화계에서 잘 알고 지냈던 사이이니 문선배가 그렇게 오해하시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민란이라 부르지만, 내일은 성공한 시민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한번 <국민의 명령 제 1차 전국봉기 '우금치, 다시 살아'>의 성공적인 결과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석현 배상.
: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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