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철탑으로 종탑으로 오르고 거리위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도 기사한줄 안쓰는 그리고
안 내보내는 공중파와 조중동 소위 주류 언론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언론들 그리고 언론인들...
내가 이 곳의 기자라면 얼굴이 화근거려 돌어다니질 못 하겠다....
기자들이 언제가 부터 발로뛰지는 않고 노트북앞에 앉아 글만쓰는 ...
글쓰는 기능인들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허리둘레를 한번 재보면 답이 나올 려나...
촛불이 시청광장에 1만명이 모여도 방송에서는 볼 수 없이 이 어이없는 현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인미디어가 되어 스스로 확성기가 되어 외치고 다녀야 할 듯 합니다.
언론, 요즘 정말 너무 심하네요...
허공클럽이라 들어보셨나요?
웃기고 슬픈이야기에 "웃프다"라고 표현을 하곤 하지요
아름답고 슬픈이야기 는 "아.프.다" 라고 표현을 하면 될거다 누군가 그러다군요.
정말 "아.프.다" 그 이야기 입니다.
[출처 : 아래 사진과 글은 노순탁씨의 글에서 발췌하여 옮깁니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 씨가 몇백 일째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을 때, 이를 지지하자고 아이디어맨인 박점규가 '고공클럽'을 제안했다 그간 십여 년 고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더 사람들 100명만 엄선해 모은다는 계획이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 포클레인 농성을 했던 나도 당연히 회원자격이 있을 거라 했는데 그만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떨어져 병원생활까지 몇 개월 했던 나를 왜 빼냐고 항의하자, 5m 높이밖에 안돼 자칫 '고공클럽'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일 높이 오른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싸움 당시 130m였다 정히 불만이면 '저공클럽'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탈락자는 정말이지 너무했다 부평 GM대우 비정규직 동지였는데 그는 한강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다 경찰이 강제 구인하려 하자 한강으로 뛰어내렸던 이였다 '야, 나는 30m도 넘는데 왜 빼?' 하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거기는 고공이 아닌 '허공'이라는 것이었다
불만이면 '허공클럽'을 따로 만들라는 말에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그렇게 피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던 시절들이 모여 이 지상 위에선 존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클럽 하나가 만들어졌다
_ 송경동
<녹색평론> 2013년 7-8월호. <문예중앙> 2012년 여름호에 실렸던 걸 재수록.
'퐁당퐁黨 > 교시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책 [1975] 출판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한복녀 ㅋ (0) | 2013.05.29 |
---|---|
"떡검아!! 내가 니들 장모다!!" (0) | 2012.01.23 |
[스크랩] 유시민,노회찬의 저공비행 1편 (0) | 2012.01.20 |
[스크랩] 김어준 레전드 강연 (0) | 2012.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