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이 맹활약하던 시절..
공연의 오프닝곡은 주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였다..
산울림 음악의 특징은,, 미니멀하다는 것,,
단순하고 단조로운 리듬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
이 반복의 특징은 공연장에서,, 아주 잘 살아나는데,,
공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늘릴 수가 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이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곡이어서,,
공연 직전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는데,, 딱이다...
언제였던가,, 산울림 공연에,,
(문화체육관에서 했다,, 지금의 경향신문 건물 뒷편,,
그때 밴드공연은 대부분 문화체육관이었다)
늦어서., 허겁지겁 공연장 정문을 들어서는데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전주가 흘러나오는 거다,,
나른한 베이스와 문득문득 자지러지는 기타,,
너무도 익숙한 곡조지만,, 도무지 질리지 않고,,
어떻게 된 게 들을수록,, 더 좋은,,
그 전주가 들려오는데,,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계단을 뛰어올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 몇 십초는 그야말로 황홀경이라,,,
내 마음에 주단이 깔리는 느낌이었고...
이후에도 몇차례 산울림 공연에 일부러 늦게 도착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주는 전희를 즐겼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서,,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 성인기의 시작이었던..
대학시절,,
산울림은,, 내 일상의 주단이었다..
선울림이 주는 파격은,,
내 청춘에 불어왔던,,
바람이었다..
그 시절 나의 하루하루는,,
산울림을 듣고 또 듣고,,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져 몇번이나 테이프를 사고 또 사고,,)
헤비메탈과 펑키 뮤직을 듣고 또 듣고,,
친구 하숙집에서 국가 변란에 관한 모의를 하고,,
심심하면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영화를 찾아 헤매는 게 다였다..
그런,, 그 시절의 바람인,,
산울림 공연을 마지막으로 간 건,,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반인가,,
암튼 세실레스토랑 공연 때였다,,,
그때도 어김없이 유치찬란한 삼원색 복장으로,,
하나는 온통 빨강,, 하나는 온통 노랑,, 하나는 온통 파랑,,
최근 몇 년 새 산울림은 몇 차례 공연을 했다,,,
재작년엔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과 함께 헌정음반도 나왔다,,
그런데 나는 공연에 가지 않았다,,
옛 친구들은,, 당연히 가자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산울림은 창훈, 창익 두 동생이 기업에 취직하면서,,
사실상 김창완 단독 밴드가 됐다..
두 동생도 밴드생활을 청산했고,,
그렇게 어쩌면 해체된 거나 다름 없는 그들이,,
10년도 훨씬 넘어서,,, 공연을 한다는 건,,
추억이자,, 노스텔지어 아니면 노추일 뿐이라 생각했고,,
추억이나 노스텔지어를 지겨워하는 나로선,,
그런 공연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업 밴드로 활동 중인,, 롤링 스톤즈가,,
국내 공연을 한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갈 것이다..
산울림은 내 청춘에..
언제나 현실이었고,, 기억이었다..
지금 내 기억도 거기에 맞춰져있고,,
그 시절 그 기억,,내 청춘에,,
햇볕 찬란한 기억을 남겨준,,
작년이었던가 산울림의 한 사람이었던,,,
막내 김창익이 죽었다..
그는 미소가 참으로 고운 사람이었다,,
산울림은 이제 비로소 레전드가 되겠지만,,
가슴이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기억에도 위로를 보내고,,,
이럴 줄 알았으면,, 까칠하게 굴지 말고,,
공연에 가보는 거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산울림 노래는
<내 마음은 황무지>, <특급열차>, <내 마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빨간 풍선>,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문 좀 열어줘>, <떠나는 우리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가지 마오>,<어머니와 고등어>,,,,,,
아아, 정말 많구나,,,,,,,
그런데 이 노래들은 노래방에서 부르면 도무지 맛이 안난다,,
무반주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제 멋대로 부를 때,,
맛이 나고,, 신난다..
이 자유로움이 산울림 음악의 본령이다..
아아,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ㅋ ㅋ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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