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가 삼 년 전에 출간되었다는데, 이제야 읽었다. 나는 평소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드러내놓
고’ 편애하는 자로서, 어디에 글을 연재하던 당시, 이 인간 책 얘기를 몇번인가 써먹다 결국 어떤 독자한테
“밤낮 그 사람 얘기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하지만 실상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장정일 의 ‘용감무쌍 배째라’ 식의
솔직성이지, 그의 독서취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독서일기>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은, 특히 <범우사> <미학사> <하늘연못> 등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며 출간된 이 시리즈 중에서도 <범우사> 판을 좋아하는 이유는, 늘 흥미진진한 오자/비문 찾기의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집고 넘어가야 할 전범’(14쪽) ‘사회 입사 과정’(73쪽) ‘고향으로 낙향한’(109쪽)’ ‘나
이젤 케네디에에 대한’(122쪽) ‘확장된 것임에도 불구하므로’(151쪽) ‘마이클 크립튼’— 내가 과문해서
Crichton를 마이클 크립튼이라고 읽는 나라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는 건지’ 등등(그 외에도
더러 있지만, 더 이상 늘어놓으면 스토커 같으니깐, 이 정도만 하고 킵핑해 두겠다.).
이전에 장정일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어떤 편집상의 원칙이 있어, 출간하는 번역물 어디에도 역자의 이
름을 표기하지 않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 역시 묻고 싶다. “범우사에는 어떤 편집상의 원칙이 있
어, 장정일의 저작물에 이토록 많은 오자가 걸러지지 않고 노출되도록 방치했는가”라고.
뭐 그 덕에 ‘숨은그림 찾기’ 하듯이 오자나 비문 찾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으니께. ㅎㅎ
실은 이게 직업병이다. 이십 년 이상을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니 무에든 텍스트만 보면 교열을 하려 든다.
영화관에서 자막 읽으면서 띄어쓰기 틀린 곳 잡아내고, 관광지 안내표지판에서 오자 찾아내고,
장정일 독서일기 시리즈는 아주 작정을 하고 연필을 집어 든 채 오자를 잡아내서 고치고 앉았다.
이러니, 정작 산에 가서 숲은 못 보고, 나뭇잎 끄트머리에서 기어다니는 벌러지 뒷다리의 잔털 수나 세고 있는 꼴이다.
여튼, 이런 직업병을 통해 발견하는 오자/교열대상의 패턴은 ‘국문법상 실수형’ ‘무성의형’ ‘무식형’ 등 다
양한데, 위에 예로 든 ‘집고 넘어가야’ ‘고향으로 낙향한’나 ‘금새’ 등등이 약간의 문법상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주옥 같은 표현을 “개 뜯어먹는 소리”라는 평범한…아니 다소 엽기적
인 표현으로 誤記한 경우의 실수는 ‘무성의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무식형’은 실수의 소산인지, 아니면 진짜 무식해서 틀린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소설
처럼>(문지스펙트럼)에서 발견되는 <안나 카레리나>란 표기. 또는 이병주 <행복어 사전> 중에 나오는 ‘마
리아 텔레즈’란 표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블라디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에서 <유리
의 성> 저자를 ‘와타나메 마사코’라고 표기한 것. 이게 과연 실수였을까? 아니면 정말 이렇게 알고 쓴 것
(혹은 번역한 것)일까.
명백한 ‘무식의 소산’도 있다. 이를 테면 <모든 것은 이브에게서 시작됐다>(리처드 아머, 시공사)에서 “앤
불린은 피의 메리였다”라고 쓴 대목이라든가. 기타 등등(예를 하나밖에 못 드는 것은 저 자신 무식하기 때
문입니다 ^^;;;;;;;).
식자 시대에 찍어낸 책과 컴퓨터로 입력, 편집해 찍어낸 책은 오자의 유형도 다르다. 식자 시대에는 낱개
의 글자가 새겨진 구리 글자를 일일이 뽑아내 판에다 심어서 인쇄를 하기 때문에, 글자가 180도 혹은 90
도로 앵돌아져 찍혀나온 오자가 더러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전산시대에 찍어낸 책에서 그런 글자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대신 전산편집한 책에서는 종종 한 칸 떼야 할 자간이 두 칸 떨어져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습관적으로 한번 두드리면 되는 스페이스 바를 두 번 두드려서 자간이 지나치게 넓어진 경우거나, 서로
합치되지 않는 워드 프로그램이 치환되는 과정에서 자간이 한 번 더 넓어져버린 경우 등이다(장정일의
<독서일기6>에서도 이렇게 자간이 벌어진 문장을 여러 군데 발견했다).
에또….. 이렇게 지엽말단적이고 사소한 오류를 시시콜콜 꼬집어 내서 열거하는 게 시방 이 글을 쓰고 있
는 나 스스로나,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무슨 인생의 도움이 되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이렇게
잘난 척 빡빡 하는 나도, 케이비에수 티브이 <우리말 겨루기> 출제문제를 풀어보면 부지기수로 틀린다.
에잇, 그런 주제에…
하여, 그저 “웃는 게 남는 거다” 싶은 생각에서, 맨 끄트머리에는 쬐금 웃기는 얘기 세 가지를 덧붙인다.
1. 업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사상 최고의 오자’는 5공 시대 동아일보에서 표기했다는 ‘이순자 여시’.
그 날, 편집부에 날벼락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2. 내가 잡지 월간'말'에 글 쓰던 시절, 직접 잡아낸 최고의 오자는 배우 선우용녀를 ‘선우옹녀’라고 오기한
것. 이건 실화다!!
3. 앤 패디먼은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자 사건 중 하나로 1631년 찰스1세를 위해
특별히 인쇄한 성경을 들고 있다. 모세 십계명 중 제7계명이 “간음하라”라고 찍혀 나왔다고 한다. 낄낄낄
|
댓글 8